눈을 감으면 어린시절 바쁘게 돌아가던 흥하던 그 시절의 내 동네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워진다.
초등학교 문 앞에는 양쪽으로 나를 반기던 문방구가 있어 천원짜리 한 장을 들고도 어디에서 무엇을 사야할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많을 때는 6점포까지 있었는데 현재는 1곳만 남아있다.
누나의 선봉으로 명동골목에 간식나들이를 나가면 내 인생 처음으로 맛보았던 미트볼. 후렌치후라이라는 낯선 이름의 감자튀김. 미쿡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즐거웠다. 지금은 텅 빈 가게들만 외롭게 골목을 지킬 뿐이다.
학교 주변 터미널 주변에는 학원이 무척 많았고 그 학원 주변에는 분식집도 많았다. 학원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우르르 나와 컵떡볶이를 먹느라 바빴다. 그 많던 학생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천안 시내에 살던 친구가 성환에는 피자집 없지? 라며 놀려도 꿈 참았는데 중학생 때 롯데리아가 생기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지나가기만 해도 그냥 자랑스러웠다. 2층까지도 늘 꽉 차 주인 아주머니가 음식 다먹었으면 나가달라는 말을 달고 사셨는데 지금은 언제가도 한가하다.
사람들은 모두 시내로 또 서울로 가버렸다. 인구는 점 점 줄어들고 태어나는 아이에 비해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가끔 뜻있는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배우고 또 카페를 창업하는 것을 보면 왜인지 고맙고 응원하게 된다.
말못하던 3살 때 이사와 한 동네 한 자리에서 33년을 살았다. 내가 이사오기 전보다는 발전된 동네 사람 냄새 나는 동네 살기 좋은 동네가 되기를 바라지만 점 점 사람 보기가 어려워지는 동네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쉽고 불안하다.
남 탓하기 전에 나는 내 동네를 지키기 위해 내 동네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하고있을까.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된다.
배가 나오는 철이되면 동네 아줌마들은 부업하러 배밭으로 향했고 또 길에는 배파는 아저씨들이 넘처나던 곳이었다.
배축제는 이 동네의 자랑이었고 주민들이 하나되는 순간이었다.
동네에 알고지내던 이웃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신다.
그 자식들은 서둘러 부모의 재산을 처분해 시내로 서울로 떠나간다.
가지말라고 붙잡을 용기도 이유도 없는 내가 한 없이 초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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