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인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마음에 남아 저도 이웃분들께 공유합니다. 다소 긴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이웃 분이 운영하시는 작은 공장 2층 다락방에서 할아버지와 작은 여동생 셋이 함께 살았습니다.
한창 먹고싶은게 많은 초등학생 어린 아이인데 가정형편이 어렵다보니 배가 고프면 동네 학교 옆 문방구에서 몰래 불량식품을 훔쳐먹었다고 합니다.
(시력이 좋지 못한 할아버지와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작은 문방구. 허름하지만 친구에게는 유일한 천국 같았던 곳.)
그러다가 어린 여동생이 먼 친척집으로 이사가 곧 헤어지게 된다는 말을 듣고 동생에게 무엇이라도 선물하고 싶었던 친구는 동생에게 오빠가 망을 볼테니 너는 가장 가지고 싶은거 하나를 몰래 가지고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신이 난 동생은 알록달록 이쁜 필통을 하나 훔쳤고, 양심에 찔렸던 친구는 주머니에 늘 간직하던 100원짜리 동전으로 지우개를 하나 사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문방구 할아버지를 보았는데 눈이 안좋아서 그렇다고 가게로 같이 가 종이에 글씨 쓰는 것을 부탁받았습니다.
간단한 일을 마치고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큰 종합과자선물세트와 연필 꾸러미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혹시 어제 같이온게 동생이냐고 물으시면서 배가 고프면 동생이랑 언제든 놀러오라고. 다만 동생에게 너가 그동안 했던 행동들을 다시는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알고보니 주인 할아버지는 친구가 그동안 가게에서 훔쳐먹은 것을 이미 알고계셨고, 먹는 것만 훔쳤기에 배고파서 그러겠거니 넘어가셨다가 먹는 것 외에도 손을 대는 진짜 도둑이 될까바 걱정을 해주신거였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자기 몸집만한 큰 과자꾸러미를 들고 미친듯이 뛰었습니다. 같이 주신 연필꾸러미를 어디에 흘렸는지도 모를만큼.. 어디로 가는지 또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게 뛰다가 지쳐 앉아 그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울며 다짐하기를 앞으로 절대 나쁜짓안하고 동생에게 또 키워준 할아버지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이 후 친구는 부끄러워 그 문방구를 다시 찾지 못했고 얼마 후 다행히도 동생과 함께 이사가 같이살게 되었는데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기에 서서히 그 문방구의 존재도 잊어갔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되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성실히 복무 중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특별 휴가를 받아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다보니 지금 까지 잊고 지내던 문방구의 할이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실까 떨리는 마음으로 휴가 복귀 전 6만원 남짓한 이등병의 월급 3달치의 현금 20만원을 봉투에 담아 그 문방구로 찾아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삐그덕 거리던 철문과 학교의 시설은 달라졌지만 그 허름한 문방구는 아직 그대로. 주변을 서성거리던 친구의 눈에 어린시절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 나 이렇게 잘컸다고 자랑도 하고 어린시절의 잘못에 대해 용서도 구하고 싶었는데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봉투에 작은 편지만 써서 준비한 과일 바구니 위에 두고 뛰어갔습니다.
마치 어린시절 도둑질을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과자선물상자를 받아들고 미친듯 도망가던 그 때의 꼬마아이처럼 군복을 입은채로 도망을 가고있는 자신의 모습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또 시간을 흘렀고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 잠들기 전 시간 때우기 위해 보던 유튜브의 알고리즘 추천에 의해 MBC 예능 놀면뭐하니의 편집된 영상을 보게되었고, 폐업을 앞둔 오랜 문방구가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영상을 본 후 무언가 머리를 띵하게 맞은 듯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예전 그 문방구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다음날 고민 고민을 하다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무작정 그 문방구를 향해 갔고, 만약 살아계시다면 이번에는 꼭 죄인처럼 도망가지 않고 옛날 얘기도 하면서 제대로된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오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은 문방구는 이미 사라졌고 새로 세워진 건물에는 편의점이 그 빈자리를 채울 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아쉬운 마음에 로드뷰를 키고 과거 역순으로 지도를 보니 문방구는 이미 없어진지가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살아계시다면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 근처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갔고, 거기에서 식사 후 쉬고 계시던 동네 어르신들에 의해 최근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문방구는 학생 수도 줄고 주변에 다이소나 편의점이 생기면서 운영이 어려워 이미 오래전에 폐업했고 아들 집에서 보내시다가 할아버지는 코로나 때, 그리고 할머니도 작년 연말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구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찾아뵈러 왔다면 뵐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과 죄책감으로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준비한 봉투를 드리지도 못하고 무거워진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술 한잔 하며 괴로운 마음에 전화했다고 저에게 꽤 오랜 시간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부를 했습니다.
너도 혹시 과거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나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다면 나처럼 후회하지말고 더 늦기전에 꼭 감사함 전하거나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그 얘기를 듣고 전화를 끊은 뒤 자기 전 누워 친구와의 통화 내용을 곱씹으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 역시 잊고지내던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 고마운 추억들이 생각나더군요.
이름 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다리를 다친 나를 위해 자진해서 가방을 들어주고 계단에서 또 화장실에서 나를 부축해줬던 고마운 친구.
중학생 때 당시 사춘기로 친구들과 어색함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에게 내가 쏘는거라며 자비로 몰래 운동회날 반 전체에게 뽕따 쭈쭈바를 사주시며 날 인기스타로 만들어주신 담임 선생님.
동네에서 친구와 밥을 먹고있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 테이블 밥값을 대신 계산해주고 인사도 없이 떠나신 쿨한 동네 이웃 어르신.
나도 이렇게 도움을 받고 고마운 일이 수도 없이 많은데 왜 나는 그걸 그리도 표현하지 못했을까.
아쉬움에 늦은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친구의 사연을 빌어 대신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선의와 관심 덕분에 저는 좋은 추억을 선물 받았고 저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잘못을 보고 훈계나 지적이 아니라 진심의 걱정과 위로를 해주신 그 문방구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저 역시 제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밤 좋은 꿈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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